욕실 환풍기가 보름 넘게 소리를 냈다. 크지는 않았고, 천장 안에서 벌레가 파닥거리는 것 같았다. 주말까지 미루다가 결국 발판을 가져다 덮개를 열었다. 까닭은 날개 한쪽에 기름때가 눌어붙어 무게 중심이 틀어진 것뿐이었다. 씻어서 다시 달았더니 이십 분 만에 소리가 사라졌다.
분해하고 나서야 알았다. 이 물건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모터 하나, 날개 한 장, 나사 두 개. 그런데 그 이십 분 전까지 나는 이 물건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삼 년 동안 내 머리 위에서 돌아갔는데, 한 번도 제대로 쳐다본 적이 없었다.
미루는 보름 동안 나는 사실 다른 셈을 하고 있었다. 인터넷에 같은 모델이 예순여덟 위안, 배송비 무료, 내일 도착. 삼십 분 들여 분해하고 씻고 조립하고, 어쩌면 다시 못 맞출 수도 있는데, 뭐 하러. 그 계산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한 항목이 빠져 있었다. 고친 뒤 그 웅웅거리는 소리가 사라지는 순간, 나는 조금 기뻤다. 그 기쁨은 예순여덟 위안과 거의 관계가 없다.
우리 세대는 ‘고장’에 대한 반응을 놀랄 만큼 획일적으로 훈련받았다. 고장 나면 바꾼다. 이것을 게으름 탓만 할 수는 없다. 물건은 싸고 인건비는 비싸다. 수리기사가 한 번 오는 값이면 새것 절반을 산다. 제조사도 수리를 권하지 않는다. 접착된 몸체, 특이한 나사, 따로 팔지 않는 부품. 열면 사실상 끝이다. 이것은 비용 계산이 낸 결과이지, 누가 일부러 괴롭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수리를 미덕이라 부르지 않겠다. 경제적으로 따지면 대개 손해다.
그러나 돈과 무관한 셈이 하나 더 있다. 물건을 열어 봐야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 수 있다. 선풍기가 우는 것은 회전자의 무게 중심이 틀어졌기 때문이고, 수도꼭지가 새는 것은 그 고무 링이 늙었기 때문이다. 그런 지식은 설명서에 없다. 설명서는 버튼 누르는 법만 가르친다. 한 번 열어 본 뒤로 그 물건과의 관계가 달라진다. ‘상품’에서 ‘내 이 물건’이 된다. 나는 구 년 탄 자전거가 있다. 체인은 두 번 끊어졌고 뒷바퀴는 한 번 갈았다. 지금은 이상한 소리마다 알아듣고, 눈을 감고도 어느 나사를 돌려야 하는지 안다. 이런 익숙함은 새 자전거를 끌고 가게를 나온다고 생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반대쪽 극단으로 가면 안 된다. 고치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전기가 통하는 것, 가스가 지나는 것, 하중을 받는 것. 그 몇 푼 아끼자고 목숨을 거는 것은 남는 장사가 아니다. 부품이 오래전에 단종되어 고쳐 봐야 빈 껍데기만 남는 것도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두 가지 ‘못 놓음’을 구별하는 일이다. 고쳐서 계속 쓸 생각이라 고치는 것과, 끝났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은 것. 앞은 손재주이고 뒤는 집착이다. 가려내는 방법은 촌스럽지만 간단하다. 내일 고쳐진다면 나는 아직 그것을 쓸까. 답이 안 나오면 버려야 한다.
물건을 고치는 일은 사소해 보이지만, 정말로 ‘소모품’을 ‘물건’으로 되돌린다. 소모품의 특징은 역사가 없다는 것이다. 다 쓰면 버리고, 서로 빚이 없다. 반면 물건에는 마모가 있고 보수한 자국이 있고 내 손자국이 남는다. 집에 고친 물건이 몇 개 있는 사람은 ‘소유’라는 말을 조금 다르게 이해한다.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돌보는 것이라고.
그 환풍기는 지금 조용히 돈다. 두 해쯤 지나면 다시 기름이 쌓이겠지. 그때도 나는 열 것이다.
卜世 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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