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도연명을 읽는데, 가장 듣기 싫은 말이 하나 있다. 도연명이야, 고대 탕핑(躺平) 제일인자 아니냐는 말. 듣기에는 익살스럽지만 실은 그를 작게 읽고, 「탕핑」이라는 말도 가볍게 읽는다.
탕핑이란 무엇인가. 그만두는 것이고, 기대하지도 않는 것이고, 아래로 손을 놓는 포기다. 그리고 도연명의 귀전은 위로 뿌리치는 몸부림이다. 《귀거래혜사(歸去來兮辭)》는 첫머리에서 말한다. 「마음이 이미 몸의 부림이 되었으니, 어찌 실망하여 홀로 슬퍼하는가.」 그가 괴로워한 뿌리는 지침이 아니라, 마음이 몸에게 부림을 당해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이었다. 이 말에는 자아의식이 강렬하다. 그는 자기가 누구인지 분명히 알고,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그런 다음에 벼슬을 버렸다. 오늘의 말로 하면 가치관이 이끄는 능동적 선택이지, 직장에 얻어맞은 뒤의 수동적 정지가 아니다.
차이는 여기에 있다. 탕핑하는 사람은 무엇에도 의욕을 내지 못하지만, 도연명은 의욕이 넘쳤다. 콩을 심고 술을 빚고 책을 읽고 시를 썼다. 「새벽에 일어나 황량한 밭을 다스리고, 달을 이고 호미 메고 돌아오네.」 날이 밝기 전에 내려가 달이 뜬 뒤에 돌아오는 노동 강도는 현령보다 작지 않았다. 그는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자기가 얕보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도 경쟁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남의 트랙에서 경쟁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본성이 술을 좋아하나 집이 가난해 늘 얻지는 못한다」던 사람이 어디서 중국 문학사에서 가장 좋은 전원시 한 묶음을 쓸 흥을 얻었겠는가.
더 우스운 것은, 도연명을 탕핑의 원조로 모시는 사람들이 대개 도연명식 청고는 가장 아까워한다는 점이다. 도연명은 귀전한 뒤 정말로 가난했다. 「짧은 베옷은 해어져 꿰매었고, 대바구니와 표주박은 자주 비었네.」 가난해서 밥을 빌러 다녔고 《걸식(乞食)》이라는 시도 남겼다. 그는 선택의 값을 전부 치렀기에 「동쪽 울타리 아래 국화를 꺾으며, 유유히 남산을 바라보네」 그 한순간의 유유함을 얻었다. 그런데 오늘의 사람들이 이 두 구절을 인용할 때 바라는 것은 대개 그 유유함뿐이고, 앞선 반생의 곤궁은 바라지 않는다. 이것은 도연명을 동경하는 것이 아니라 복숭아만 따고 나무는 심지 않겠다는 것이다.
나는 「도연명식 탕핑」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것 자체가 시대의 병을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람이 순전히 뜻을 위해 안정을 버릴 수 있다는 것을 더는 잘 믿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물러남을 탕진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단일한 평가 체계 안에 오래 있으면 사람은 다른 삶을 상상하는 능력을 잃는다. 도연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가 깨어 있었고 용감했고 선택의 값을 치렀다고 인정하는 순간, 지금 자신의 타협이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가 아니었음을 인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사직하고 은둔하라고 권할 생각은 없다. 도연명 자신도 「부귀는 내 소원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것은 그의 소원일 뿐, 모든 사람의 소원이 될 필요는 없다. 내가 싫어하는 것은 그 경박한 전용이다. 깊이 생각한 하나의 선택을 나태한 농담으로 풀어 버리는 것. 인물이 오독되는 것은 괜찮다. 중요한 것은 오독이 우리 대신 사고의 부담을 내려 준다는 점이다. 옛사람도 그 정도였으니 내가 뭘 그리 따지겠나, 하고.
밤에 여기까지 읽고 책을 덮으며 생각해 본다. 도연명이 후세에 남긴 가장 값진 것은 아마 전원도, 시도 아니라 그 동작 자체였을 것이다.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는 길 바깥에서, 진지하게, 값을 치르며, 다른 길을 걷는 것. 탕핑은 손을 놓는 것이고, 그는 손을 바꿔 쥔 것이다. 다른 손으로, 자기가 진정으로 쥐고 싶은 것을 쥐려고.
그 사이를 가르는 것은 용기의 크기가 아니라, 끝까지 생각해 보았는가다. 생각이 끝났다면 귀전은 귀향이고, 생각이 끝나지 않았다면 눕는 것도 그저 누워 있는 것이다.
복세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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