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 《낙양지(洛陽紙)》는 처음 들으면 국풍(國風)의 은근함이지만, 다시 들으면 창작자가 자기에게 보낸 편지다.
노래의 눈은 그 한 물음에 있다. “낙양의 종이가 귀해졌는데, 내가 뽐내도 되는가?”
1. 전고: 천 년 전의 종이값 폭등
「낙양지귀(洛陽紙貴)」는 《진서(晉書)》에서 나온다. 서진(西晉)의 좌사(左思)가 《삼도부(三都賦)》를 지을 때 구상하기를 십 년, 집 안팎과 심지어 뒷간에도 종이와 붓을 두고 좋은 구절이 떠오르면 곧 적었다. 부가 완성되었을 때만 해도 명사 육기(陸機)의 비웃음을 샀다. 그러나 권세 있는 집안들이 다투어 베껴 쓰기 시작하자 낙양의 종이값이 일시에 치솟았다. 네 글자 성어는 그렇게 생겨났다.
허숭은 그 네 글자를 그대로 곡 이름으로 삼았다. 묘한 것은 그가 회고에 머물지 않았다는 점이다.
2. 자기 대입: 득의한 뒤의 물음
곡에는 문답 형식의 구절이 하나 있는데, 꽤 음미할 만하다:
낙양의 종이가 귀해졌는데, 내가 뽐내도 되는가 (모두 나로 말미암은 것) 지나온 굴곡은 하루아침에 지워질 수 있는가 (잊게 하지는 못하네)
괄호 안팎으로 묻고 답하니, 등불 아래 마주 앉은 두 사람의 자신 같다. 하나는 말한다. 온 풍광이 나로 말미암았으니 뽐내도 무방하지 않느냐고. 다른 하나는 담담하게 고개를 젓는다. 그 냉대와 굴곡은 지워지지 않고, 지울 필요도 없다고.
사정을 아는 이들은 가사 속의 「십 년을 책상에 엎드려」 「냉대와 비방」 같은 말이 좌사를 겉으로 쓰면서 속으로는 허숭 자신을 쓰고 있다고 말한다. 인터넷 가수로 시작해, 얕보이고 낙인이 찍히고, 마침내 이름을 얻자 옛 곡이 뒤져 나와 온 거리에 흘러나온다. 사람들이 소비하는 것은 문학성인가, 아니면 「허숭」이라는 간판인가. 그래서 그 「뽐내도 되는가」는 결코 허영을 묻는 것이 아니라 깨어 있음을 묻는다. 뽐내면 길을 잃고, 창작의 초심, 곧 자신을 표현하는 일을 잊게 된다.
3. 옛것을 빌려 오늘을 비유하다: 종이값에서 트래픽값으로
좌사의 시대에는 글이 귀해서 종이가 귀했다. 글자는 느렸고 베껴 쓰는 일은 값이 비쌌으며, 부 한 편을 전하려면 정말로 낙양 성의 종이 절반이 들었다.
오늘의 시대에는 흐름이 귀해서 글이 귀하다. 화면은 밝고 손끝은 빠르며, 스치면 잊히고 몇 초 만에 지우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노래는 옛 부를 현재로 「순간이동」시키는 말장난을 빌리는데, 보기에는 가벼워도 떨어지는 지점은 무겁다. 「귀함」이 종이값에서 트래픽으로 옮겨 갈 때, 가격과 가치는 조용히 갈라선다. 따라가는 이는 많고 알아보는 이는 드물다. 이것이 좌사의 곤경이고, 모든 창작자의 일상이다.
4. 음향의 풍경: 은근함과 웅장함 사이
편곡은 표준적인 중국풍 진형이다. 고쟁(古箏), 고금(古琴), 피리와 현악이 얽히는데, 자세히 들으면 의외의 자리에 블루스의 푸른 기운이 몇 줄 배어 있어 곡 전체의 결이 입체적으로 살아난다. 허숭의 노래는 여전히 무거운 것을 가볍게 드는 솜씨로, 감정을 과장하지도 불쌍한 척하지도 않고 복잡한 정서를 그저 거기 놓아 둔다. 깃털 부채에 건각 두건을 두른 듯한 여유가 있다.
권말 소기
《낙양지》는 답이 아니다. 그저 곁에서 잠시 함께 있어 줄 뿐이다. 득의와 상실 사이에서, 옛 부와 오늘의 물결 사이에서, 「해야 하는가」 세 글자의 망설임 속에서.
당신도 지금 책상에 엎드려 있다면, 당신의 종이가 귀해질 만한 값이기를 바란다.
복세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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