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편의점에서 아침을 샀다. 계산대 앞에 여섯 명이 서 있었고, 계산대는 하나뿐이었다. 줄은 카운터 모서리를 돌아 입구까지 늘어졌다. 앞쪽에서 누군가 중얼거렸다. 계산대 하나 더 열면 큰일이라도 나나.
이런 순간 줄 서기는 순수한 비효율로 보인다. 여섯 명의 돈을 한 줄에서 차례로 받아야 하니, 오 분을 더 서 있어도 누구 하나 더 사는 것은 없다. 총시간으로만 따지면 그 오 분은 확실히 낭비다.
그런데 줄이 해결하는 것은 효율의 문제가 아니다. 더 어려운 일을 해결한다. ‘누가 먼저 왔는가’를 눈에 보이는 것으로 바꾸는 일이다. 사람은 서로 속인다. 특히 증인이 없을 때 그렇다. 줄은 공개된 장부다. 자기 앞에 머리가 몇 개 있는지, 뒤에 있는 사람이 슬금슬금 앞으로 나오는지 누구나 볼 수 있다. 영리하지는 않지만 정직하다.
곰곰이 보면 새치기에 화가 나는 이유는 잃는 시간의 양과 맞지 않는다. 앞에 한 사람 끼어들면 고작 수십 초를 더 기다린다. 정말로 상처받는 것은 다른 것이다. 방금까지 지키던 불문율이 그 자리에서 바보 같다고 증명되는 것. 규칙을 지키는 것은 다들 지킨다고 믿기 때문인데, 지키지 않는 사람이 벌도 받지 않고 통과하면 내가 지킨 그 일 분이 우스개가 된다. 분노의 대상은 사실 새치기한 사람이 아니라 규칙의 실패다. 그래서 “죄송합니다, 급해서요"라고 돌아보며 말하는 사람은 대개 들여보내 준다. 규칙을 인정하고 사정을 봐 달라고 한 것뿐이니까. 말없이 파고드는 사람이 미움을 산다.
같은 맥락에서 ‘돈을 주고 우선권을 사는’ 일에 대한 내 생각은 예전보다 무거워졌다가 가벼워졌다. 공항의 패스트트랙, 관광지의 급행권, 식당의 우선 예약. 그것들이 공정을 무너뜨린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차이를 값으로 명시하고, 규칙은 모두에게 공개되어 있으며, 얼마를 내면 되는지 누구나 계산할 수 있다. 예측이 서 있으면 줄은 무너지지 않는다. 정말 견디기 힘든 것은 다른 형태다. 아는 사람이 한마디로 들어간다. 내부 번호가 조용히 풀린다. 창구가 이유도 없이 하나 닫힌다. 특권 자체가 미운 것이 아니다. 숨겨진 특권이 미운 것이다.
한 겹 더, 거의 이야기되지 않는 것이 있다. 현대의 삶은 수많은 줄을 감춰 버렸다. 번호표 기계가 번호를 건네고, 대기 안내판에는 “앞에 세 팀"이라고만 적혀 있다. 낸 이력서는 하나의 풀에 떨어지고, 원고는 심사 대기열에 들어간다. 이런 줄은 보이지 않는다. 앞에 몇 명이 있는지도, 옆문으로 들어간 사람이 있는지도 모른다. 보이는 줄은 짜증나게 하고, 보이지 않는 줄은 의심하게 한다. 짜증은 잠깐이지만 의심은 원망으로 쌓인다. 그래서 진행 상황을 드러내 주는 곳——번호를 불러 주는 기계, 택배의 ‘지금 어디’, 병원 화면에 흐르는 호출——은 기다리는 시간이 같아도 사람들의 화를 훨씬 덜 돋운다. 그곳이 파는 것은 결국 하나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가 보인다는 것.
줄 서기에는 예전에 미처 보지 못한 부산물도 있다. 서 있는 동안 사람들은 낯선 이와 어깨가 닿을 만큼 가까이 있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도시에서 연기하지 않아도 되는 드문 시간이다. 웃지 않아도 되고, 자신을 소개하지 않아도 되고, 누구도 비켜 달라고 하지 않는다. 그 빈틈을 휴대폰이 메워 버리면 줄에는 기다림만 남는다. 줄 서기를 아름답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결국 시간 낭비다. 다만 낭비된 그 몇 분 안에는 원래 다른 무엇인가가 들어 있었다.
그날 줄은 마침내 움직였다. 두유와 만두 두 개를 사고, 계산대의 아가씨가 고개를 들어 “오래 기다리셨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문을 나서며 그 한마디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당신의 시간이 쓰였다는 것을 인정하고, 당신이 모두를 대신해 이 질서를 유지해 왔다는 것도 인정한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라는 한마디는 계산대 하나 더 여는 것보다 훨씬 싸고, 훨씬 잘 듣는다.
卜世 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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