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정이 고성법을 밀어붙이던 해, 명의 국고는 비어 있었고 관청의 걸음은 느렸다. 그가 원한 것은 아주 구체적이었다. 돈, 그리고 속도.
만력 원년, 그는 천하의 관리들에게 장부 한 벌을 만들게 했다. 모든 일에 기한을 정하고 문부를 세 권으로 나누어 한 권은 각 부에, 한 권은 육과에, 한 권은 내각에 두게 했다. 기한이 지나도 끝나지 않으면 단계마다 책임을 물었고, 육과가 지우고 내각이 조사했다. 사서가 남긴 결과는 훌륭해 보인다. 『명사』의 “태창의 곡식이 십 년을 버티고, 경사의 쌓인 은가 400여만 냥에 이르렀다"는 말 그대로, 창고의 곡식이 십 년치였고 태복시에 쌓인 마가은이 400여만 냥이었다는 뜻이다. 숫자는 사실이었다. 골칫거리도 사실이었다.
나는 고성법이 나쁜 제도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그것은 명대에 드물게 ‘책임’을 구체적인 날짜에 붙여 본 시도였다. 그전의 조칙은 대개 “즉시 시행하라"는 세 글자에서 끝났다. 누가 하고, 언제 끝내고, 못 끝내면 어떻게 할지는 전부 공백이었다. 장거정이 메운 것은 바로 그 세 칸이다. 나라의 정령이 형용사에서 동사로 넘어가는 그 한 걸음만으로도 존중할 만하다.
문제는 네 번째 칸이었다. 그 세 권에 적힌 글자를 누가 확인하는가.
지표가 유일한 통행증이 되면 사람은 일을 위해 일하지 않고 지표를 위해 일한다. 징세 독촉은 할당이 되고, 할당은 추심이 되고, 추심의 끝은 곡식을 팔고 땅을 저당 잡는 일이 된다. 지방관이 갑자기 나빠진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다른 산수를 배웠다. 자기 칸을 곱게 유지하는 편이 한 고을 백성의 삶을 유지하는 것보다 싸고 안전하다는 계산이다. 그리고 내각에서 장부를 넘기는 사람이 보는 것은 깨끗한 세 권뿐이다.
이 병은 명대만의 것이 아니다. 오늘의 주간 보고, 논문 편수, 흔적 남기기 대장은 모두 고성법의 후손이며, 조상보다 조상답게 생겼다. 그렇다고 숫자를 통째로 부정할 생각도 없다. 숫자의 가장 큰 공적은 천 리 밖의 사람도 알아보게 해 준다는 점이다. 한 사람의 부지런함도, 한 고을의 형편도 서울에 앉은 수보는 볼 수 없지만 “징수 미납이 몇 할인지"는 볼 수 있다. 숫자는 신뢰의 대역이다. 대역은 멀리서는 통하고 가까이서는 사람을 속인다. 그것은 숫자의 성질이지 죄가 아니다. 나는 평가를 없애자고 말하는 게 아니다. 기한 없는 정령이 서랍에서 썩는 것은 사실이고, 그 점에서 나는 장거정이 옳다고 본다. 내가 반대하는 것은 평가를 통치 그 자체로 착각하는 일이다. 평가는 “했는가"에만 답하고 “제대로 했는가"에는 답하지 못한다. 후자에 답할 수 있는 것은 결과에 책임질 사람뿐이고, 사람은 서식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나도 이런 짓을 한 적이 있다. 몇 해 전 “매일 천 자"를 스스로에게 걸었다. 보름 동안 글자 수는 날마다 채웠지만 돌아보니 헛소리뿐이었고, 지우는 일이 쓰는 일보다 힘들었다. “일주일에 하나는 제대로 이해하기"로 바꾸자 분량은 절반으로 줄었는데 읽을 만한 것이 늘었다. 지표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사람의 영리함이 그쪽으로 자란다. 본능이니 누구를 탓할 일도 아니다. 탓할 것은 지표를 정한 사람이 자기가 원한 것이 ‘그 일’인지 ‘그 숫자’인지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장거정은 죽은 뒤 집이 몰수되었고 고성법도 차츰 풀렸다.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니 정책도 죽었다"고 말하기 좋아한다. 그러나 내 생각에 무너진 것은 법이 아니라, 매일 세 권을 펼쳐 기한을 하나하나 맞춰 보던 그 사람이었다. 제도에서 가장 값비싼 부분은 설계가 아니라 유지다. 누군가 오래, 지루하게, 공도 없이 대조해 주어야 한다. 그 일을 오래 맡을 사람이 없으면, 아무리 곱게 짠 제도도 눈코가 성긴 그물로 늘어진다.
숫자는 스스로 자란다. 자란 것은 먹을 수 없다. 어떤 곳이 정말 나아지고 있는지 판단하려면 장부 위의 숫자만 읽지 마라. 그 숫자 뒤에서 아직 누군가가 한 걸음 더 나아가 대조하고 있는지 보라.
卜世 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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